비정상적인 가계대출 급증

가계 빚은 가처분소득의 1.52배

노일용 기자 | 기사입력 2011/11/02 [10:45]

비정상적인 가계대출 급증

가계 빚은 가처분소득의 1.52배

노일용 | 입력 : 2011/11/02 [10:45]

 
미국, 일본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치보다 높아 

지난 8월 중순, 몇몇 시중은행에서 가계대출이 전면 중단됐다. 우리나라 가계 빚이 1000조원에 달하는 시점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대출규제에 자금계획을 세웠던 고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경제계 일각에서도 너무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일단 대출 중단을 철회되었지만 은행들의 대출 증가율이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이미 넘어선 상태로 서민각계의 대출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가계대출 일시 중단’이라는 ‘막장 드라마’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원인은 비정상적인 대출 증가세. 다시 말해 정부에서 가계 대출 증가율을 월 6%이내에서 억제하라고 은행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미 전달보다 가계 대출이 6% 이상 증가한 은행들이 갑자기 대출을 중단해버린 것.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비난의 화살을 상대방에게 돌리기에 바쁘다. 이러한 모든 피해는 대출이 필요한데도 받지 못하는 일반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계부채 1,000조원 돌파, 이미 위험수준 넘어서
8월 12일 발표한 시중은행 대출 중단은 이미 두달이 넘어가지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출 중단의 여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출 심사 역시 전보다 훨씬 까다롭다.
이미 가계 빚이 위험 수준에 올라 있다고 판단한 게 금융당국과 은행의 입장이다. 은행이 가계에 계속 돈을 빌려주고 그 결과로 가계 빚이 더욱 늘어나면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가계 부채는 엄청난 수준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년 3월 말 640조원이던 가계 빚은 2010년 3월 말에는 786조원까지 늘어났고, 올해 6월 말에는 876조원에 달하고 있다. 가계 빚이 2년3개월 새 236조원 늘었다.
빚이 늘어도 소득만 많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계가 지고 있는 빚은 소득에 비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가계 빚은 가처분소득의 1.52배에 이른다. 미국의 1.32배, 일본의 1.29배는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4배보다 높은 수치. 다시 말해 한국의 가계는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정상적인 가계대출 급증 원인은 뭘까?
전세가격 급등, 주식시장 폭락 등을 원인으로 꼽아
그럼 왜 가계대출이 갑자기 급증한 것인가?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전문가들이 뽑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전세가격의 급등을 꼽을 수 있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다 보니 급한대로 은행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역에 따라 전세가격이 높게는 두 배 가까이 오르다 보니 전세자금을 빌리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
전세가격 급등을 대출 ‘수요’로 이해한다면 오랜 기간 유지된 저금리는 대출 ‘공급’을 늘렸다.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성장하겠다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다 보니 돈이 걷잡을 수 없이 풀렸고, 은행들이 이 돈으로 대출 경쟁에 나선 것이다.
지난 8월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은 전세자금 대출이 아닌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었다. 그러나 이는 서류에 기재된 대출 목적일 뿐이고 따로 주택을 갖고 있는 세입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전세자금으로 쓰거나 급한 대로 마이너스통장으로 돈을 마련해 전세자금을 메웠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두 번째로 주식시장 폭락도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주가가 지나치게 많이 내렸다고 판단한 개인투자자들이 앞으로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고 돈을 빌려서라도 주식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모든 원인의 밑바닥에는 저금리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시 말해 가격이 싸다 보니, 즉 금리가 낮으니까 대출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지나치게 낮은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아무리 가계부채 억제 대책을 내놓아 봐야 당장 급한 불만 끄고 보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 가계대출 해결 방안 제시
“근복적으로 가계소득 늘리기 위해 정부 고심 반드시 뒤따라야” 
고려대학교 이필상 교수는 “현재 가계부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의 심화로 저소득층 소득이 줄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전·월세자금이나 기초생활비 등 생계형 부채가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카드론이나 제2금융권, 심한 경우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벌리게 되면서 빚이 급격히 늘어 가계의 연쇄부도까지 가져올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했다.”고 가계부채 급증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은행 대출이 대부분 거치식 변동금리부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원금은 안 갚고 이자만 갚는 구조로 굳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뤄 볼 때 별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가 밝히는 가계부채 문제 방안으로는 먼저 은행들의 대출 방식을 고정금리부 장기 원리금 분할상환식으로 바꿔 가계가안정적으로 원금을 갚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은행들은 대출금리는 올리고 예금금리는 낮추는 등 예대마진을 이용해 ‘금리 따먹기’돈벌이를 하고 있으나 경제가 살아야 은행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 덧붙여 이 교수는 “빚을 갚기 위해 중요한 것은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이니만큼 정부가 희망근로사업을 다시 시작해서라도 서민의 소득을 늘리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고 피력했다.
 
가계부채, 대출 증가속도 줄여 잡는다!
가계부채 대책을 강구 중인 금융감독 당국이 가계대출의 증가 속도를 제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빠른 은행에 추가자본을 부과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지만 금융권의 반발이 커지자 증가 속도 조절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지난 10월 13일 금융계와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가계부채 태스크포스(TF)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가계부채 대책 마련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산이 갑자기 증가할 때 부실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가계대출의 증가 속도를 제어하는 방법이 좀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출증가 속도에 대한 규제는 해외에서도 사례가 없기는 하지만 TF 내에서도 빠른 자산증가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다.
TF 내에서는 일부 의견으로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빠르고 총량이 많은 은행 등에 추가자본을 부과하는 방안도 제기됐지만 이중규제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으로 채택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의 총량이 많다고 해서 이중으로 자본을 부과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에 특화된 영업을 해온 은행에 과도한 규제가 가해진다고 업계 역시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은 이미 고(高)위험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10~20%포인트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확정해놓은 상황에서 추가로 자본을 쌓도록 할 경우 은행에는 너무 많은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의 한 관계자도 "가계대출의 총량이 많은 은행에 자본을 이중으로 부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따라 자본을 부과하는 것을 차등화하자는 의견이 제시된 만큼 실현 가능성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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